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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

조던 이후 최고의 슈팅가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 3만 점을 기록한 선수 중에 제일 어리면서 루키 시즌 이외에 매년 NBA 슈퍼스타에 뽑힌 선수, 올림픽에서 두 번의 금메달을 획득하고 NBA 역대  두 번째로 한게임 80점 이상을 기록한 최고의 슛터 아쉽게도 2020년 생을 마감한 코비 브라이언트.

 

 

 

1. 코비 브라이언트의 유년기

 

 

 

  1978년 8월 23일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NBA 출신 조 브라이언트였다. 코비가 6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NBA를 떠나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향했다.

 

거기서 코비는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AC밀란을 보면서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농구만 보면서 자라온 코비는 축구가 농구보다 더 좋을 리가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미국에서 가져온 매직존슨, 래리 버드등 유명한 선수들의 비디오를 보며 플레이를 따라 연습하거나, 체육관에서 아버지 연습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91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로워 메리언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로워 메리언 고등학교는 컨퍼런스 최하위 팀이었습니다. 그런 팀에서 코비는 단시간 내에 에이스로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데뷔 첫 시즌에 평균득점 18 득점을 올렸고,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부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코비는 타고난 운동능력을 갖춘 데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독한 연습벌레 였습니다. 3학년이 되면서 그의 실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경기당 놀라운 성적을 올리며 펜실베이니아주 최고의 선수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전국의 대학에서 코비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SAT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 장학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5년 여러 명문대학의 진학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고등학생의 신분이었던 케빈가넷이 NBA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을 받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NBA 진출을 심도 있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4학년이 되면서 폭발력 있는 실력으로 고등학교를 최고의 팀으로 끌어올렸고, 팀은 42년 만에 첫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이때 코비는 시즌 경기당 평균득점 30.8점을 기록했고, 4년 동안 총득점이 2883 득점으로 40년 전에 체임벌린이 기록했던, 펜실베니아주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습니다. 

 

2. 프로 무대로의 진출

 

 

 

  96년 6월 26일 드래프트에서 13번째로 샬롯 호네츠에 지명되었으나, 레이커스의 단장의 요청에 의해서 LA레이커스로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레이커스의 단장인 제리 웨스트는 코비는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을 선수" 라며 가능성을 믿었고, 마침 샬롯도 가드와 스몰포워드 자원이 많아서 트레이드는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코비의 첫 시즌은 대부분의 시간을 벤치 멤버로 있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18살이었던 코비는 시즌 중반이 지나면서 출전시간과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시즌 후반에는 벤치에 에이스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96년 12월 17일 코비에게는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농구의 황제 조던을 수비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롤 모델이었던 조던을 꼭 막아보고 싶었지만, 코비는 이날 조던에게 30점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시련이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플레이오프 마지막 쿼터 박빙의 상황에서 3번 연속으로 에어볼을 던지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팬들에게 질타를 받게 되었습니다. 2년 차에도 역시 식스맨으로 활약했지만, 출장시간이 대폭 늘어났고, 득점 또한 두 배이상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생애 첫 서부 올스타팀의 주전가드로 뽑혔습니다. 3년 차에는 주전으로 좋은 출발을 하였지만 기대만큼이나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늘어난 출장시간에 비해 평균 20 득점에도 미치지 못한 부진함으로 인해 팬들의 많은 질타를 받았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유타에 패하며 팀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에 레이커스는 시카고 불스를 6번의 우승으로 이끈 필 잭슨 감독을 영입하게 되었습니다. 잭슨 감독은 불스시절처럼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같은 방법으로 적용시켰고, 결과는 굉장히 성공적 이였습니다.

 

골밑은 샤킬 오닐이 장악하고, 그로 인한 안정감으로 인해 코비도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수비면에서 부족했던 코비는 독한 연습으로 자시의 수비능력을 향상했습니다. 코비는 항상 체육관에서 연습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을 했고, 훈련장에는 항상 첫 번째로 도착했습니다.

 

새벽 5시에 매일같이 러닝을 할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선수로의 자격을 갖춘 상황이었다. 슈퍼스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꾸준한 노력과 강도 높은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99~00 시즌에는 팀의 주축 선수로 이미 3번의 플레이오프를 경험하게 된 코비는 오닐, 글렌 라이스와 함께 폭발적인 활약을 하며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LA 레이커스는 01~02 시즌까지 3 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

 

07 시즌에 접어들면서 코비의 실력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등번호도 8번에서 24번으로 바꾸고 24번의 의미는 24시간 훈련에 전념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번호였습니다.

 

이 시즌 4경기에서 연속으로 50점 이상을 기록하면서 코비는 생애 두 번째 득점왕을 차지하게 됩니다. 08~09 시즌부터 2년 연속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코비는 파이널 MVP를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2년 NBA 역대 5명만 존재하는 3만 점의 엄청난 기록을 달성합니다. 5명의 선배들보다 코비는 1~2살이 더 어렸기 때문에 정말 대단한 기록이었습니다. 13 시즌 이후 코비는 노쇠화로 인해 성적이 많이 저조 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코비는 팀을 위한 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득점머신으로 알아주던 그가 득점대신 패스플레이로 팀의 공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그의 변화는 팀에게 3연승을 가져다주었고, 이 3경기에서만, 39 어시스트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코비는 엄청난 승리에 대한 열망과 플레이오프에 대한 갈망이 컸던 코비 브라이언트 였습니다. 14~15 시즌 어깨 부상으로 인해 경기 출장 회수가 줄어들고 성적 또한 좋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코비를 보며 팬들은 코비의 은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2016년 4월 13일 유타 재즈와 마지막 은퇴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코비는 60 득점을 기록하며 마지막경기를 승리로 자축했습니다. 

 

3. 코비의 이야기들

 

  코비는 NBA 한 팀에 두 개의 영구 결번이 있는 유일한 선수이다. 그의 등번호는 8번과 24번이다. 데뷔 시즌부터 2006년까지 8번을, 이후에는 24번을 달았다. 두 숫자로 세운 기록은 비슷하다.

 

우선 8번을 달고3번, 24번을 달고 2번을 우승을 했습니다. 8번을 달고 총 707경기에 출전해 16,866 득점, 3634 리바운드, 3,148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24번으로는  총 638경기에 출전해 16,717 득점, 3409 리바운드, 3,154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는 코비가 은퇴한 후 8번과 24번을 영구 결번으로 남겼다. 코비의 첫 등번호 8번은 코비가 고교생 시절 참가한 NBA 희망캠프에서 착용한 등번호 143번의 각 번호를 합한 것이다.

 

두 번째 숫자로 24가 선택된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코비가 중학생 때와 고교 1학년 때 등번호 24번을 달고 뛴 점을 고려하면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농구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가능성이 크다. 코비의 별명은 "블랙 맘바"입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 사는 독사의 한 종이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뱀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4년 영화 킬 빌에서 여주인공의 코드네임은 블랙 맘바였다. 영화를 본 후, 코비는 자신을 블랙 맘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은퇴 경기 후 "뭐라고 더 말할 수 있겠어요? 맘바가 떠난다."라는 은퇴 연설을 남겼다.

 

코비의 자산은 약 5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는 마이클 조던과 매직 존슨 다음으로 세 번째로 부유한 NBA 선수이다. 조던은 은퇴 후 인터뷰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현역 선수들과 1-1로 경기하면 이길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마이클 조던은 "나는 다른 모든 선수들을 이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비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내 모든 기술을 가로채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이에 코비는 "과거에는 모두가 당신을 따라 했고 나도 따라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나를 따라 한다"라고 재치 있는 반응을 보였다. 코비는 오스카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코비는 자신이 직접 쓴 '친애하는 농구'로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자가 됐다. '디어 버킷볼'은 코비의 농구 인생을 요약한 작품으로 디즈니 애니메이터 글렌킨과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참여했다. "저는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코비가 말했습니다.

 

농구 선수로서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드리블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농구 이외에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생겨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코비가 사망한 뒤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 '체인지'에는 코비를 새 NBA 로고에 포함시켜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틀 만에 동의 건수가 200만 건을 넘어섰다.

 

현재 NBA 로고는 1969년에 제작되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스타 제리 웨스트를 모델로 삼았다. 웨스트는 2017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엣 "나는 더 이상 NBA 로고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NBA가 로고의 주인공을 바꾸겠다고 하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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