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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 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 더 뛰어났고, 4 쿼터의 사나이라고 불릴 만큼 마지막 쿼터에서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던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 인디애나의 전설 레지밀러. 마지막 순간 비수를 꽂아 놓는 일이 잦아 밀러가 활약하는 순간을 가리켜 사람들은 '밀러타임'이라 불렀다.

 

하지만, 밀러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타고난 운동능력은 없었고, 오히려 선천적 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불리한 신체 조건을 이겨내고 최고의 슈터가 될 수 있었을까요?

 

 

 

1.  레지 밀러의 어린 시절

 

 

  레지 밀러는 1965년 8월 24일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리버사이드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 고관절 기형으로 인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던 밀러는 5살까지 다리에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다녀야 했던 약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구기 종목을 좋아하는 형제들 덕에 형제들과 운동을 즐기면서 점점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보조기 없이 걷기 시작하면서 밀러는 가장 먼저 농구 코트를 찾게 되었습니다. 1살 누나 이자 여자 농구 전설인 셰릴과 1대 1 시합을 자주 하면서 농구에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누나와의 이런 연습이 밀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이 또래보다 큰 키에 센터를 담당하던 누나의 블록을 피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빠른 릴리스와 높은 포물선을 그리는 밀러 자신만의 독특한 슈팅폼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도 누나는 이기기 힘든 상대였는데 하루는 밀러가 한 경기 40 득점을 달성하고, 신이 나서 부모님에게 자랑했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누나는 같은 날 한 경기 105점을 폭발시키고, 뉴스에 나오며 역사적인 활약을 한 날이었던 것이다.

 

누나만큼 일찍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농구 명문인 UCLA로 진출했다. 1학년 때는 후보선수로 평균 13분 정도를 경기에 출전하면서 경기 감각을 익혔고, 2학년 때부터 기량을 인정받으면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평균 55.3%라는 높은 야투 성공률과 15.2 득점 4.3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셔널 인비테이션 토너먼트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3학년 때는 평균 25.9 득점 5.3 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주목할 만한 선수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졸업반 시즌까지 열심히 활약한 끝에 4년간 누적 점수가 무려 2,095점에 달하면서 선배인 카림 압둘 자바에 이어 학교 통산득점 2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NCAA 토너먼트 2라운드인 32강에서 좌절을 맛보며, 대학 농구를 끝마치고, 1987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습니다. 

 

2. 프로 무대에서의 커리어

 

 

 

  1987 드래프트에는 데이비드 로빈슨, 피펜, 케니 스미스 등 NBA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중 밀러는 1라운드 11 픽으로 인디애나에 지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겁이 없고 승부욕이 강했던 밀러는 트래쉬 토킹도 거침없이 하는 대담함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정규시즌 전에는 건들면 안 되는 선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밀러가 실수한 상대는 바로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이었습니다. 연습 경기에서 루키에게 갑자기 트래쉬 토킹을 듣게 된 조던은 후반에서만 40 득점을 퍼부어준 뒤 "흑인 예수에게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주체 못 하는 패기로 재미있는 일화를 만들면서 시작한 루키시즌 "저 부실해 보이는 마른 체격을 가진 선수가 NBA 무대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사람들의 우려가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증명해 나갔습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몸싸움도 약하고 운동능력도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슛찬스를 잡기 위한 오프 볼 무브는 당대 최고였고, 백업 슈팅가드로 평균 22.4분을 소화해 내면서 평균 10 득점 야투율 48.8%를 이뤄내며 NBA 무대에 잘 안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0년간 플레이오프 무대에 2번밖에 진출하지 못한 인디애나는 밀러가 합류한 87-88 시즌에도 동부 9위로 마무리하며 플레오프 진출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다음 시즌에는 주전 슈팅가드 존 롱의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팀 성적은 부진했지만 그의 공백으로 밀러에게는 주전으로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밀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평균 16 득점에 3점 슛 성공률 40.2% 의 결과를 보여주면서 리그 내 수준 있는 슈터로 거듭나게 됩니다. 3번째 시즌부터는 인디애나의 주전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하고 팀에는 슈렘프라는 장신 포워드가 합류했으며, 팀 내에 센터 릭 스미츠가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팀 전력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좋은 상황으로 밀러의 기량도 자연스럽게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상 없이 82경기를 치러내면서, 평균점수 24.6 득점을 기록하며 인디애나의 에이스로 성장했고, 밀러는 첫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하게 됩니다.

 

첫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고 정규 시즌보다 더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당시 최강의 수비팀이었던, 배드보이즈 디트로이트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일찍 시즌을 마쳤습니다.

 

91-92 시즌에도 플레이오프 진출은 성공했지만, 두 번의 기회 모두 보스턴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며, 1라운드 탈락이라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에 한계를 느낀 인디애나는 92,93 시즌 개막전 2:2 트레이드로 주축 선수의 변화를 계획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동부 8위로 겨우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유잉의 뉴욕 닉스에게 1-3으로 빠르게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인디애나는 좋은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힘없는 골밑 포지션으로 인한 잦은 실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반복되는 성적 부진으로 인해 밥 힐 감독이 자리엣 내려오고 93-94 시즌부터는 래리 브라운 감독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래리 감독은 내 외곽 모두 선수들을 보강하면서 팀로스터의 변화를 꽤 했습니다. 레지 밀러의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을 줄이면서도 슈터의 장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패턴 농구를 지시했고, 오프 더 볼 무브가 우수했던 밀러는 스크리너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효율성이 최고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샤프 슈터의 기준인 180 클럽 기준을 달성했고, 팀 역시 공수양면으로 더 짜임새 갖춘 팀으로 발전하며 동무 5위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또 오르게 됩니다.

 

항상 1라운드에서 빠르게 짐을 쌌던 인디애나는 오닐과 하더웨이가 있는 올랜도 매직을 3전 전승으로 이기는 놀라운 상황을 연출했고, 2라운드에서 만난 애틀랜타 또한 4-2로 가볍게 승리하며,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됩니다.

 

파이널에서 만나게 된 팀은 시카고에게 매번 가로막혀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 뉴욕 닉스였습니다. 두 팀은 서로 홈에서 2승씩 사이좋게 나눠가지며 팽팽한 균형을 이뤘고, 뉴욕 홈구장에서 5차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은 타이트한 강압 수비로 3 쿼터까지 인디애나를 70-58로 가로막았고 여유롭게 승리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 뉴욕 닉스의 광팬이었던 스파이크 리 감독이 코트사이드에서 경기 중인 레지 밀러에게 "3점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너에게 몇 백만 달러씩 주는 인디애나도 참으로 한심하다."라며 트래쉬 토크를 던졌고, 이에 화가 난 밀러는 손가락 4개를 펴 보이며 초크 하는 시늉을 하면서 맞받아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쿼터에서 두고 보자는 예고대로 게임의 상황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밀러의 최고 장기인 3점 슛 퍼레이드를 보여주며 메디스 스퀘어를 조용히 잠재웠고 결국 4 쿼터에서만 혼자 25 득점을 퍼부으며 역전승을 이끌어냈고 스파이크리는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스파이크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스파이크가 누구예요?"라고 답하면서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 보였다. 시리즈 전적 3-2로 앞서나가면서 남은 두 경기 중 한 번만 승리하면 파이널에 올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게 되었지만, 6,7차 전에서 모두 패하면서 파이널 진출을 할 수 없었고, 시즌을 마쳐야 했습니다.

 

94-95 시즌에도 포인트 가드 마크 잭슨이 합류하면서 인디애나는 52승 30 패의 기록을 세우며 올랜도에 이어 2번째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밀러를 중심으로 한 인디애나는 1라운드에서 애틀랜타를 3대 0으로 제압하고 2라운드에 진출 또다시 숙명의 라이벌인 뉴욕 닉스와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홈구장에서 진행된 1차전에서는 공격과 수비에서 월등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뉴욕은 105대 99로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20초도 남지 않은 순간 6점 차의 리드를 하고 있는 뉴욕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레지밀러에 의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연속된 3점 슛과 경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자유투 두 개를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107대 105로 2점 차 승리를 견인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8.9초 만에 벌어진 바로 밀러타임이었습니다. 7차전 끝에 뉴욕닉스에 작년에 복수를 해주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됩니다.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팀은 최고조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올랜도 매직 7차전 까지 가는 공방 끝에 마지막 게임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결국 우승의 문턱에서 다시 한번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97~98 시즌부터는 전설의 래리 버드가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크리스 멀린을 영입해 밀러와 함께 팀의 공격을 강화시키면서 팀은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클리블랜드, 뉴욕을 차례로 제압하면서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상대는 6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는 조던의 시카고 불스 4차전에서 밀러는 경기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역전 3점 슛을 꽂아 넣는 등 같은 슈팅가드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조던과 상반되는 플레이 스타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디애나는 결국 아쉬운 점수차로 패배하면서 파이널 무대에는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00~01 시즌에는 밀러의 꾸준한 노력 끝에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뉴욕을 4-2로 따돌리고,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파이널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에 레이커스였다. 결국 2승 4패로 챔피언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우승반지를 차지하지는 못하였지만, 18년간 한 팀에서 헌신한 밀러가 사용하던 31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습니다.

 

연설의 자리에서 밀러는 " 이 자리에 역대 최고의 선수가 세 명이 있다."라고 말했고, 바로 그 세명은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그리고 "본인의 누나"를 지명하면서, 자신의 롤 모델로서 명예의 전당까지 이끌어준 누나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늘 최선을 다하며 부족한 신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남들보다 한 발 더 뛰는 부지런함을 보여줬던 밀러는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인디애나 팬들에게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3. 플레이 스타일

 

 밀러의 주특기는 경기 내내 하프코트 전체를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 3점 슛이었습니다. 밀러는 공이 없는 상태에서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선수였습니다.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스크린을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순간적인 노마크 찬스를 만들어내고, 패스를 받아 빠르게 캐치 앤 슛을 던지는 오프 더 볼 무브는 역대 NBA 최고로 평가받았습니다.

 

'동네 한 바퀴'라고 불리는 이러한 플레이스타일은 외곽에 머물러있다가 노마크 찬스에서 킥아웃 패스를 받아 3점 슛을 쏘는 것과는 다르게, 높은 농구지능, 순발력, 빠르고 정확한 슈팅 능력이 요구되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역대로 생각해 봐도 밀러만큼 오프 더 볼 무브를 구사할 수 있었던 선수는 리처드 해밀턴, 레이 앨런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1대 1 돌파, 아니면 공을 잡고 드리블하면서 풀업점퍼를 던지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한 오프 볼 무브에서도 빈 공간이 생기면 3점 슛만 쏘는 것이 아니고, 스크린을 돌아 나와서 패스를 받아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가서 풀업 롱 2나 레이업, 러너도 잘 구사했다.

 

오프 볼 무부에서 워낙 다양한 기술들을 구사하니 수비들이 굉장히 힘들어했습니다. 슛에 대해서는 경지에 오른 선수는 확실했고, 자유투도 굉장히 정확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리딩 가드 스타일의 플레이는 거의 하지 않았고, 볼 소유 시간도 매우 짧았고, 슛도 많이 던지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경기 당 슛 시도 횟수를 보면 라이벌이었던 조던은 22.9회인데 비해 레지밀러는 12.6회 밖에 되지 않았고, 레이 앨런은 15.7회였습니다. 팀의 영향력 있는 슈팅가드 치고 슛 시도 횟수가 적었지만, 필요한 순간에 받으시 넣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해주었던 밀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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